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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활동가 응원사업] [공익활동가 쉼 프로젝트] 이영하 - 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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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02.21 11:32 7,3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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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이야기

 

늘 여행은 제주다. 그 돈이면 동남아에서 더 맛있는 거 많이 먹는다는 핀잔을 들어왔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은 늘 제주로 간다. 자연 경치도 좋고, 말도 통하고, 음식도 입에 맞아서다. 그리고 항상 제주로 가는 이유는 남편과 나의 (통일운동이 빌미가 되어 치르고 있는) 재판 때문이기도 하다. 한 해 두 해 길어진 재판은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 초등학교에 가도록 이어졌다. 재판 중에 해외에 나가려면 갈 때마다 재판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무슨 이유로,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나가 있는지 상세히 적은 종이에 판사의 기분 좋은 도장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 해도 단수 여권이다. 요즘 세상에 단수 여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여튼 우리 집은 1회용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딱 한 번 해외여행을 위한 서류 거사를 치르고 난 후 다시는 여행 출발 전부터 기분이 구겨지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우리 가족을 도장도 없이, 서류도 없이 따뜻이 품어주는 곳은 제주도다. 물론, 잘 다녀오라는 희망재단의 두드림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우리 집 여행은 이번에도 제주도다.

 

1123일 저녁 가족 상봉을 위해 김포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 가는 버스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되었다. 딸아이는 공항 어디에서 아빠를 만나는지,  시에 만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오는지를 계속 물어보았다. 공항에서 만나는 아빠는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어떤 사람인 것처럼. 늘 보는 집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사람들. 그래서 여행이 좋은가 보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부슬부슬 비가 오려는 중에 해녀박물관.

해녀에 대한 관심보다는 박물관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에 끌려 온 곳.

내가 상상한 경치도, 전망도 아니었지만 해녀박물관은 뭉클했다. 애 낳기 전날까지, 애 낳고 사흘 만에 바다에 들어갔다는 할머니 해녀의 이야기에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내가 이 고생을 할 줄 알고 나를 낳았는가라는 구슬픈 제주 민요가 쓰리고 아프다. 고달픈 삶을 산 해녀들에게 여성으로서 깊은 연대감이 느껴진다. 이런 와중에 - 점점 줄어드는 해녀를 이야기하며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서 안타깝다는 박물관 영상은 정말이지 옥에 티다. 그 고생을 하는 사람은 안 떠오르고 문화유산만 떠오르는 당신들 어쩌면 좋으냐. 그깟 문화유산, 개나 줘라!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사려니숲.

세월호 탑승객 김동수씨 부부가 해설사로 일하는 사려니숲. 늘 한 번쯤 가고 싶었던 곳에, 늘 한 번쯤은 제주에서 만나자 했던 부부가 일한다. 안산 이웃에서, 조금은 아픈 모습으로 보았던 분을 싱싱한 숲 속에서 본다면 어떨까. 입장이 바뀐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탑승객의 잔재는 하나도 없이 멋진 해설사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그날따라 서울에 일이 있어 부부는 휴가를 냈다. 꼭 만난 듯이 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고, 이곳저곳 어디를 둘러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다시 와야할 곳이 돼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사려니숲은 충분히 다시 올 만하네. 세상에 바다가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도 소리마냥 숲에서 솨아 솨아 잎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난다. 딸아이랑 달리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그러다 또 업어주며 길을 걸었다.

 

 

라면집 앞에서 만난 바다.

가족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중요했던 일정은 해물 라면집 들르기다. 싸고 맛있다는 라면집은 해변가를 바라보는 전면 유리 건물이다. 이런 정도의 경치면 커피나, 술이나, 칼질을 해야할 것 같은데 후루룩 후루룩 모두 라면을 먹는다. 그날 유독 거센 바람에 파도가 들이치는 창 밖 풍경을 넋 놓고 보았다. 라면이 나오자 남편도, 딸아이도, 그리고 나도 창밖이 아닌 라면 그릇만 쳐다보네. 그래, 먹는 게 최고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다시 바다가 보이기는 한다. 바다를 보면 늘 이런 말이 나온다. “, 살 것 같다.” 그래, 역시 바다를 보니 살 것 같다. 바다 짠 내음을 있는껏 들이켰다. 철썩 대는 파도, 차가운 바람, 구름과 햇살도 들이키는 숨에 딸려 몸속에 들어온다. 몸도, 마음도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바다를 보면 몸서리치는 세월호 엄마들과 4년을 붙어있는 나는 왜 항상 바다를 보러 오나. 바다 이야기를 하며 우는 엄마들을 뒤로 하고 그 바다를 보러 오는 마음이 미안하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엄마들에게 제주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다. 여행지에 어디냐는 질문에 제주라는 답을 듣자 나오는, 세월호 엄마들의 그 쓸쓸한 표정을 알기 때문이다. 바다에 설레는 내 마음은 늘 미안하니까. 이제 좀 그만 미안하고 싶어서 제주 바다 앞에 서는데 늘 미안함이 따라온다. 비행기를 타고 이 먼 제주까지 집요하게 따라온다. 딸아이와 바다를 마주보고 서서 한참이나 바람을 맞았다. 몸이 시원하면 복잡한 생각들이 없어질 것 같다. 파도치는 바다가 말해준다. 다 괜찮다. 모두 괜찮다. 이대로도 다. 바다는 늘 이렇게 말해준다. 역시 이번에도 이 얘기를 들으러 여기에 왔다. 다시 올 때까지. 괜찮다. 괜찮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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