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공익기금

[공익활동가 응원사업] 2019년 (공익기금) 공익활동가 재충전지원사업_배현정님

profile_image
관리자
2020.08.25 13:23 2,910 0

본문

짧은 쉼, 긴 호흡을 위한 준비

배현정

 

 

쉬어야 한다는 온갖 신호

2019, 올해로 10년차 활동가가 되었다. 사회의 첫직장으로 안산환경운동엽합에 입사해 환경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배우며 쉴틈없이 달려와 어느덧 중견활동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사이에 결혼과 출산까지 인생의 주요과정을 지나왔다.

 

최근 나의 정체성은 워킹과 맘, ‘워킹맘이다.

활동가로 10년차, 본격적인 사무국장은 3년차(실제로는 5년차지만 출산과 육아로)로 활동에 탄력이 붙었고 그만큼 더 많은 내용과 활동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름의 성과를 만들며 활동했다. 하지만 취약한 인력구조와 불안정한 재정구조 등으로 활동가 개인의 역할과 업무가 늘어나면서 환경운동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기 보단 눈앞에 닥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에 급급한 활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특히 갓 돌이 지난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복직한 이후 육아와 활동을 3년째 병행하면서 일을 끝내지 못하고 아이의 하원시간에 맞춰 퇴근하거나, 퇴근 후에도 아이를 방치해가며 일을 하기 일쑤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배우자의 지방발령으로 올해부터 주말부부가 됐다. 평일 독박육아로 인한 피로도는 절정에 달했고, 주말에 겨우 완전체 가족이 되지만, 활동의 특성상 주말업무가 많아 우리가족은 늘 절반만 함께 하게됐다.

꾸역꾸역 해오던 활동과 육아 모두 빨간불이 켜졌다.

지속가능한 활동, 평화로운 가정을 위해 나를 돌아보고 가정을 돌아봐야 한다는 신호가 안팎으로 들려왔다. 그렇게 지쳐가던 중에 안산희망재단의 활동가쉼프로젝트를 알게되었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매일 오늘 처리할 일, 진행해야할 회의자료만 보고 있다가 가족끼리의 여행을 계획하고 짜는 것은 바쁜 속에서도 즐거웠다.

 

이 여행, 갈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난관이 닥쳐왔다. 계획했던 시기에 역시나 수많은 업무들로 여행시기조차 확정할 수 없었다. 겨우 낼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은 남편이 안되거나.. 제주도는 커녕 1박도 가지 못할 상황이었다. 소중하게 얻은 이 기회마저 기한내 돈을 써야하는 사업이 되어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10월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온갖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환경연합에서 준비했던 견학프로그램이 실내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11/2 예정됐던 DMZ생태평화기행 회원행사도 취소됐다.

지금이 기회였다. 당장 이번 주 숙소를 구할 수 있는곳 중에서 그간 가보고 싶었던 곳을 추렸다. 하루 만에 순천과 지리산여행이 결정됐다. 떠나기 3일전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1/1 여행을 가기 위해 10/31 청주에서 집으로 오던 배우자가 고속도로에서 4중추돌 사고를 당했다. 중간에 낀 차라, 차는 수리센터로 보내고 병원은 가보지도 않은 채 렌트를 받아 자정이 다된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병원에 가야한다, 입원이라도 해야한다 등등 집안사람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평소에 아프지도 않는데 교통사고 핑계삼아 입원하고 합의금받고 하는사람 경멸하지 않았어? 입장바꿔 우리가 상대차라고 생각해봐. 난 아프지 않으니 예정대로 여행가자. 지금 병원가서 검사하고, 아프면 갔다와서 병원갈께라는 단호한 대답에 내남편이 이렇게 양심적이었나를 새삼 느끼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여곡절끝에 여행을 출발했으면 좋았을텐데, 또하나의 복병, 아이가 출발일 아침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들린 소아과에서 몇시간을 기다리느라 점심 때가 넘어 출발했는데 열이 39도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순천을 가는 내내 열이 떨어질 기미가 없다. ! 차를 돌려야하나...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가보자. 아직 몸이 좀 뻐근한 남편은 5-6시간 운전을 해야했고, 아픈 아이를 수발하며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휴게소도 제대로 들리지 못하고 순천에 도착했다. “고생많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52fe01564828e9f5df43309f945aaa6c_1598329292_7757.jpg

    일몰을 봐야하는 순천만이라 부랴부랴 이동했다.

순천만을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내가 대학졸업 전 전망을 고민하던 2008년에 무작정 3주간 혼자 국내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중반에 도착한 순천에서 순천만 일몰을 보던 순간이 생생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평화로움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그 여행이후 전망을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잡았고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ㅎㅎ) 나중에 꼭 와야지 했지만, 순천이 국제정원이 되는 등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몰려갈 때도 와보지 못하고 10년이 넘게 흘렀다. 순천에 한번도 와보지 못했다는 남편 말을 듣고, ‘순천은 가을이지하며 무작정 오게 된 것이었다.

52fe01564828e9f5df43309f945aaa6c_1598329319_3113.jpg
52fe01564828e9f5df43309f945aaa6c_1598329321_4952.jpg
52fe01564828e9f5df43309f945aaa6c_1598329327_3181.jpg

우린 좋았지만 자기 놀 것이 없는 아이는 엄마 여행은 언제가?”라는 말을 순천만 데크 한가운데서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20kg가 넘는 아이를 안았다 업었다 하면서 우리 모두 지쳤다. 이미 해가 지고 있어 이러다 순천만 일몰을 놓칠 것 같았다. 일몰전망대로 향하는 숲속길에서 하는 수없이 난 이미 보았으니 남편이라도 빨리 갔다오라고 등을 밀었다. 남편이 혼자 떠나고 둘이서 숲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일몰사진 한 장을 가지고 남편이 내려왔다.

내려가는 동안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져서, 별빛, 달빛만 보며 순천만을 나왔다.

52fe01564828e9f5df43309f945aaa6c_1598329357_4948.jpg

    이제 행복한 순천여행이었습니다~로 끝나면 좋았을텐데 끝까지 쉽지 않았다.

낙안읍성마을에선 걷기를 포기한 아이 때문에 급하게 휠체어를 빌렸다. 그나마 마지막 방문지였던 지리산정원은 다행이 숲속놀이터, 자연 속 놀이터로 아이와 신나게 놀았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온천도 그럭저럭, 숙소도 그럭저럭을 마치고 여행 마지막 날 식사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오길 잘했어

여행하는 동안 온전한 휴식, 쉼은 없었다. 여행을 가기까지의 온갖 사건들은 이 여행을 포기해야하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여행을 갔다오니 역시, 좋았다.

혼자갔던 순천만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갔던 것도, 깜깜한 밤길을 걸었던 것도, 지리산정원의 놀이터를 보며, 우리 동네에도 이런 놀이터가 있으면 어떨까를 상상하는 것도.

가장 좋았던 것은 새로운 여행을 약속한 것이다.

함께 보지 못했던 일몰도 다시 보아야하고, 지리산정원의 놀이터에서 시간제약 없이 놀아보고, 하루 머물면서 별을 보자고 약속했다.

이 짧은 쉼은 다음의 쉼을 기대하고 약속하게 했다. 이러한 점들이 늘어나고 연결되면서 쉽지만은 않은 활동의 긴 여정으로 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하나의 씨앗을 심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씨앗이 발화돼 꼭 싹이 날 수 있도록 다음여행, 새로운 자극을 빨리 계획해야겠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